-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마산(馬山) 사람이다.
1921년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키 위한 군자금 모집차 상해(上海)로부터 마산으로 온 김수인(金守仁)을 만나 그와 함께 전남 해남군(海南軍) 황산면(黃山面)으 이희용(李喜鎔)을 찾아가 군자금 5천원의 기부를 요구하여 동월 27일 목포에서 이희용의 친척 이현(李玹)을 통해 60원을 수령하였다. 이튿날 양인은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광복단(光復團) 명의의 군자금 모금 지령장을 휴대하고 경남 통영(統營)의 임철규(林徹圭)를 찾아가 역시 군자금 5천원의 기부를 요구하였으나 거부 당해 모금에 실패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탐지되어 일경에 붙잡힌 그는 1922년 5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7년 3월 마산에서 신간회(新幹會) 지회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여 마산지회를 성립시키고 그 간부로 일하였다.
이어서 동년 4월 20일에는 3월의 경남도 평의회(評議會) 석상에서 [조선인 보통학교 교육 불필요], [조선어 통역 철폐] 등의 친일매국적 주장을 편 통영(統營) 출신 평의원 김기정(金淇正)에 대한 마산청년회(馬山靑年會) 주최의 성토연설회(聲討演說會)에 연사로 참여하였다.
또한 동년 12월 신간회 마산지회와 마산청년동맹의 발기로 재만동포옹호동맹(在滿同胞擁護同盟)을 조직키 위한 지역 사회단체협의회를 개최할 때 그 준비위원으로 활동함과 동시에 마산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 동맹휴학 활동의 진상조사위원으로도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高等警察關係摘錄(慶南警察部, 1936. 12)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413·648面
- 慶南獨立運動小史(卞志燮, 1966. 10. 15) 上卷 16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0輯 1124·112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302·303面
- 東亞日報(1927. 3. 5, 4. 17, 12. 25)
- 判決文(1922. 5. 30. 京城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