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제주도 축항사무소(築港事務所)의 인부(人夫)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던 중인 1937년 10월경부터 1939년 봄 무렵까지 제주읍 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선교사 손신부(孫神父 : 본명 다우슨 패트릭)에게 수 차에 걸쳐, 제주도 모슬포(慕瑟浦) 소재 일본 해군비행장의 구조와 그 확장공사 사실, 모슬포 비행장에서 발진한 일본 해군기들의 중국 상해(上海) 방면에 대한 도양폭격(渡洋爆擊) 사실 제주도 동쪽 해상 우도(牛島)에 위치한 해군 특설망루(特設望樓)의 구조와 임무 등에 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또한 1940년 9월경부터 1941년 9월경까지는 제주읍 천주교회의 전도사장(傳道師長)으로서 위의 손신부와 수 차에 걸쳐, "중일전쟁(中日戰爭)과 영독전쟁(英獨戰爭)의 전황에 관한 일본 신문들의 보도는 거의가 허위이다", "만일 영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마땅히 일본이 패전해야 한다", "일본은 전몰자가 많다 보니 소집에 응할 만한 군인이 더 이상 없다"는 내용의 시국담을 하였다.
이 무렵 일제는 제주도를 중국에 대한 도양폭격의 발진기지로 만들면서 도내 반일세력을 색출 제거코자 하여, 우선 적성국(敵性國)인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인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 조직을 탄압 파괴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도 위와 같은 어행으로써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1941년 말에 손 신부 등과 함께 일경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그후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국방보안법 및 군기(軍機) 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2년과 육·해군형법위반으로 금고(禁錮) 6월이 병합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42. 10. 24 光州地方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