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27 충남 대전에 소재한 음식점 김현태 (金顯泰) 방에서 윤명화 (尹明化) , 김성현 (金聖鉉) , 김창규 (金昌奎) , 조상연 (曺相連) , 소홍규 (蘇洪奎) 등과 함께 당일 장날을 이용하여 다수의 면민 (面民) 과 함께 태극기 (太極旗) 를 들고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 를 배포하며 만세를 부를 것을 협의하고 동일 하오 3시경 장터로 나가 동지 (同志) 들과 함께 태극기를 군중 (群衆) 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를 선창 (先唱) 하여 군중으로 하여금 조선독립 만세 (朝鮮獨立萬歲) 를 부르도록 하였고 또 김창규 (金昌奎) 가 소지한 ‘조선독립신문’ (朝鮮獨立新聞) , 국민회보 (國民會報) 및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 등을 살포 (撒布) 하며 활동하다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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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대전(大田) 사람이다.
1919년 3월 27일 대전에 있는 음식점 김현태(金顯泰)의 방에서 윤명화(尹明化)·김성현(金聖鉉)·김창규(金昌奎)·조상연(曺相連)·소홍규(蘇洪奎) 등과 함께 장날을 이용하여 다수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동일 오후 3시경 그는 동지들과 함께 장터로 나아가 김창규가 군중 앞에 나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일장 연설을 한 후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펴다가 이를 탄압하던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1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97·9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128·11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