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9년 만주 (滿洲) 로 망명 (亡命) 하여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검찰원 (檢察員) 으로 입단, 후 (後) 에 대한광복단 (大韓光復團) 총영 (總營) 국내 출장원 (國內出張員) 에 피명 (被命)
2. 1921년 1월 8일국내출장 중 (國內出張中) 선천 (宣川) 에서 왜경 (倭警) 에 피체 송청 (被逮送廳) 되어 무기징역 (無期懲役) 언도 받음(1921. 5. 30)
3. 1932년 8월 31일영어 생활 (囹圄生活) 11년 3개월만에 출옥 (한국독립운동사 (韓國獨立運動史) p.254,291 항일순국의열사전 (抗日殉國義烈士傳) p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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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1년 1월 8일
3. 1932년 8월 31일
-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백삼규(白三奎)·조병준(趙秉準)·전덕원(全德元)·박양섭(朴陽燮) 등이 남만주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 서구 대화사(奉天省柳河縣三源堡西溝大花斜)에 모여 조직한 대한독립단에 가입,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대한독립단이 연호의 사용 문제로 단기 또는 융희를 주장하는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과 민국년호를 주장하는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으로 나누어지자 조병준·김승학(金承學) 등과 함께 민국독립단에 가입, 국내특파원으로 활약하였다. 1921년에는 광복군사령부 국내특파원으로 최지관(崔志寬)·이운봉(李運逢)·이정호(李貞浩)·손봉선(孫鳳善)·김순호(金順浩)등과 함께 의주(義州)·구성(龜城) 등지에서 지방 조직과 군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주구배 숙청 등 활동을 하다가 동년 1월 8일 선천(宣川)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54·29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7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2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