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한기욱은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원(慶源) 출생으로 본관(本貫)은 청주(淸州)이며, 자(字)는 경화(景化), 호(號)는 호정(湖亭)이다. 16세 때 노령(露領) 연추(煙湫)로 이주하였으며 1906년 이상설(李相卨)이 간도 용정촌(龍井村)에 서전서숙(瑞甸義塾)을 세우자 학감(塾監)으로 시무하였다. 1908년에는 러시아 연추에서 선흥의숙(鮮興義塾)의 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12년 대종교를 신봉하여 북만(北滿)의 시교원(施敎員)을 자청하고 길림성(吉林省) 의란도(依蘭道) 밀산(密山)으로 이주하여 시교당(施敎堂)과 한흥의숙(韓興義塾)을 세웠다. 길림성 밀산현(密山縣) 동문(東門) 인근 한인(韓人) 촌락(村落)에서 대종교(大倧敎) 동이도(東二道) 제3지사(支司) 전사(典事)로서 활동하였다.
1922년 음(陰) 9월 7일 토비(土匪) 500명이 촌락을 습격했을 때 주민을 보호하다 토비들에게 희생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8권 756면
- 朝鮮日報(1923. 1. 2)
- 해조신문(1908. 4. 30, 1908. 5. 3, 1908.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