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 12월 충북 (忠北) 제천 (堤川) 에서 안승우 (安承禹) 이춘영 (李春永) 등과 함께 기의 (起義) , 대장 (大將) 에 추대되어 8도 (道) 에 격문 (檄文) 을 띄워 거의 (擧義) 의 필요성을 알리고 충북 (忠北) 단양 (丹陽) 등지에서 활동 (活動) 하다가 의진 (義陣) 을 확대, 유인석 (柳麟錫) 을 대장 (大將) 에 추대하고 진동장 (鎭東將) 과 별모장 (別募將) 에 선임되어 원주 (原州) 등지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격전을 벌였으며 1986년 유인석 (柳麟錫) 이 서행 도만 (西行渡滿) 할 때 수행하여 만주 회인현 (懷仁縣) 에 공자묘 (孔子廟) 건립을 준비하던 중 익사 (溺死) 하기까지 의병장 (義兵將) 등으로 5년여간 (年餘間)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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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1895년 12월 충북 제천(堤川)에서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 등이 거의하여 원주성(原州城)에 입성한 후 의진을 정비할 때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그는 8도(道)에 격문을 띄워 거의(擧義)의 필요성을 알리는 한편 충북 단양(丹陽)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의진을 확대, 유인석(柳麟錫)을 대장(大將)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진동장(鎭東將)과 별모장(別募將)에 선임되었으며, 원주(原州) 등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격전을 벌였다.
이렇듯 1896년 유인석이 서행도만(西行渡滿)할 때 수행하여 만주(滿洲) 회인현(懷仁縣)에 공자묘(孔子廟) 건립을 준비하던 중 익사(溺死)하기까지 의병장으로서 5년여간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就正錄(李奎顯, 1901) 第6卷
- 檄告八道列邑
- 太白의 歷史(趙東杰, 1973) 195面
- 韓國의 名家(金德亨, 1976) 53面
- 의병들의 항쟁(조동걸, 1980) 67·350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17·161·171·182·331·349·412·414·418·427·430·451·455·457·539面
- 丹陽郡誌(丹陽郡誌編纂委員會, 1977)119·704·705面
- 畏堂先生三世錄(1983. 3. 1) 175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63·174·213面
- 騎驢隨筆(國史編纂委員會) 29·31·41面
- 忠淸北道誌(忠淸北道誌編纂委員會, 1975) 178·179面
- 習齋集(李直愼, 1969) 第9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