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경남 (慶南) 마산 (馬山) 소재 창신학교 (昌信學校) 의 교사로 재직하며 항일 민족교육 (抗日民族敎育) 을 실사하였고 1915. 1. 15(음력) 경북 (慶北) 달성군 수성면 (達城郡壽城面) 안일암 (安逸庵) 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 (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 (中央總部) 의 마산지부장 (馬山支部長) 으로 활동하고 1920. 12. 조선청년회연합회 (朝鮮靑年會聯合會) 를 조직, 집행위원 (執行委員) 으로 교무부 (敎務部) 를 맡아 잡지「아성 (我聲) 」을 발간하여 청년 계몽운동 (靑年啓蒙運動) 에 힘썼으며 국학 연구 (國學硏究) 를 통해 민족문화의 보존, 발전에 기여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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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경남 마산(馬山) 창신학교(昌信學校)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민족의식의 고취에 힘쓰고 있던 중, 1915년 음력 1월 15일 경북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 소재 안일암(安逸庵)에서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결성되자, 마산(馬山)지부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 12월 2일 서울에서 전국 각 청년회 조직들의 연합체로서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가 발족할 때에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교무부(敎務部)를 맡아 계몽 월간지 「아성(我聲)」을 발간하는 등 회세(會勢)의 확장에 힘썼다.
또한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1919)」,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1923)」 등 국학관계의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통하여 민족문화의 보전과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83·18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89·495면
- 한국아나키즘운동사(同史편찬위원회, 1978) 前篇 12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326·327·331·471·966·970·10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464·470·4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7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976·9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