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4월 11일 경상북도 영주군 장수면 호문리(好文里) 웅곡산(熊谷山)에서 손달익(孫達翼)과 함께 만세운동을 시도했다.
4월경 손달익은 조선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만세운동 시행을 결심했다. 4월 11일 화기리(花岐里)의 장윤덕(張潤德), 문수면(文殊面) 별사리(伐賜里)의 황학명(黃學明)이 호문리로 왔다. 또한 호문리의 손용백과 송득룡(宋得龍)도 함께 모였다. 손달익이 이들에게 “각지에서 대한국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자 모두 찬성했다. 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기 위해 호문리 웅곡산으로 올라갔다. 손달익이 도판(塗板)에 ‘大韓國獨立萬歲’라고 혈서(血書)를 쓰고, 모두에게 만세를 외치자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들이 만세를 부르려는 순간 순찰 중이던 반구헌병주재소 소속 헌병보조원에게 발각되어 모두 체포를 당했다.
손용백은 만세운동 시도로 헌병보조원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구류되었다. 같은 해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석방되었다. 1920년 4월 28일 칙령(勅令) 제120호에 의해 징역 3월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 1919. 5. 3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