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영주의 3.1만세시위는 이산면 조암리의 오하근과 봉화군 상운면 내림리의 박인서가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였다가 3.1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들은 3월 20일 영주읍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준비하였다. 3월 20일 오전 11시 영주읍 장날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재빨리 군중들에게 나누어 준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수백 명의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출동한 일본 헌병은 총검으로 군중을 해산시켰으나 시위군중은 이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4월 11일에는 장수면 호문리에서 손달익(孫達翼)이 장윤덕·송득룡(宋得龍)·손용백(孫龍伯)·황학명(黃學明)에게 동네 웅곡산(熊谷山)에 모여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고 하였다. 웅곡산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려다 순회 중인 헌병보조원에게 발견되어 체포되었다.
이처럼 장윤덕은 1919년 4월 11일 장수면 호문리 웅곡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려다 일본 헌병보조원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8일 구류되어 1919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안동지청(安東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방면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31)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사안동판(獨立史安東版)(독립지사안동기념사업회, 1985) 238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312~3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