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0년경부터 중국 길림성(吉林省)에서 이범윤(李範允)의 부하로 활동하고, 1920년까지 함북 온성군(穩城郡) 일대에서 일제 관공서 등을 공격하는 활동을 하였다.
1910년 7월 중국 길림성 삼마동(三麻洞)에서 이범윤의 부하로 총기 관리를 담당하였다. 1911년 길림성 황구(黃溝)에서 국민회(國民會) 평의원(評議員), 1912년 대별남구(大別南溝) 소재 창의소(倡義所) 간부로 활동했다. 창의소는 중국과 러시아 혁명당과 합동하여 일제를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 즈음 대동협신회원(大東協新會員)으로 활동했다.
1912년 3월 훈춘현(琿春縣) 간도영사분관(間島領事分館) 소속 조선인 순사보(巡査補)와 일본 밀정을 징치했다가 1913년 8월경 중국 관헌에 체포되어 국자가(局子街) 지방심판청(地方審判廳)으로 넘겨져 징역 10년을 받았다. 중국인과 동지들의 탄원으로 수개월 후 석방되었다.
1914년경 황병길(黃炳吉)의 부하로 훈춘ㆍ왕청현(汪淸縣)ㆍ나자구(羅子溝) 등지에서 이동휘(李東輝)ㆍ조상갑(趙尙甲) 등과 독립운동세력의 규합을 협의하고 배일선전 활동을 하였다.
1919년 조카인 양하구(梁河龜)가 북일학교(北一學校)에서 일제의 조선인 순사를 징치한 일로 체포되자 훈춘분관 관헌을 처단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같은 해 6월 황병길 등과 나자구 등지에서 국내 침공 작전을 논의하고 그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3월 15일부터 27일까지 훈춘현 밀강사(密江社) 삼마동에 본부를 두고 국내 침공 작전을 세웠다. 같은 해 4월경 함북 온성군 일대에서 500여 명의 병력으로 일제 관공서 공격을 지휘하였다. 1921년 훈춘현 덕혜향(德惠鄕) 대황구(大荒溝)에서 일본 왕의 사진을 표적으로 사격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20. 5. 1, 5. 2)
- 東亞日報(1920. 5. 1)
- 獨立新聞(1920. 5. 8)
- 韓人 暴徒 銃器 搜索에 關한 件(1910. 8. 15), 淸領 黃溝附近 排日 鮮人의 動靜에 關한 件(1911. 5. 2), 間島集報(1911. 9.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
- 排日鮮人에 關한 名簿 送付의 件(1915. 11.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不逞鮮人 歸順運動에 관한 건(1917. 11. 4), 排日鮮人 梁河淸 恭順에 관한 건(1917. 11.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
- 獨立運動에 關한 件(1919. 5. 21)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
- 獨立運動에 關한 件(1919. 7.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의 部(8)
- 不逞鮮人 名簿 送付의 件(1921. 7.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8)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1권 分冊 386~388면
- 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高麗書林, 1989) 제2권 107~1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