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종성(鍾城) 사람이다.
만주에서 대종교(大倧敎)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항일무장 조직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총재였으며 대종교(大倧敎) 지도자였던 서일(徐一)의 사위이다.
1908년 부모와 함께 만주 훈춘현(琿春縣) 남벌리로 이주하여 1914년 그곳에 설립된 사립 춘동소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공부하였다. 그후 가족의 이주로 왕청현(汪淸縣) 덕원리에 있는 사립 명동학교에서 계속 학업을 하면서 민족의식을 형성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교사로서 활동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31년 봄 동지 3명과 함께 백초구 영사관(百草溝 領事館)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후 교사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고를 받고 북만주 해림(海林)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1934년 정월에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한 후 대종교의 3대 교주 윤세복(尹世復)의 감화를 받고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같은 해 3월 9일 동경성에 경일시교당을 설립하였다.
1932∼35년에는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가 목단강(牧丹江) 상류에 설립한 발해농장 관리인으로 서일의 유가족과 함께 활동하며, 독립군과 비밀 연락을 주고받았다. 1934년 동경성으로 이주하여 대종교인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종교는 1931년 만주사변이후 일제가 만주를 지배하게 되자 항일종교로 간주되어 그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1942년 일제의 대대적인 대종교 탄압, 즉 임오교변(壬午敎變)으로 조선과 만주 각지에서 윤세복 이하 다수의 대종교 지도자들이 동시에 검거되었다. 이때 최관도 동지 24명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6년 대종교 총본사가 서울로 귀환한 뒤에도 만주에 남아 영안현 고려인민회장, 신안진(新安鎭) 조선족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壬午10賢殉敎實錄(大倧敎總本司, 1971) 319面
- 장백산(1990, 6期) 82·83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8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8卷 800·804·806·80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571·57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