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0년대에 중국 랴오닝성 안둥현 육도구(六道溝)에 거주했다. 1923년 3월 8일 새벽에 의열단(義烈團) 단원이자 고려공산당원인 백영무(白英武), 홍종우와 함께 폭탄 6개를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군(義州郡) 광성면(光城面) 미륵동(彌勒洞) 백영무의 집으로 운반하였다. 9일경 홍종우에게서 폭탄 10개와 ‘항일 문서’ 등을 건네받아 육도구 자택과 그 주변에 보관했다. 11일 의열단원이자 고려공산당원인 김시현(金始顯)과 폭탄을 서울 효자동(孝子洞) 조황(趙晃)의 집으로 보냈다.
백영무 집에 보관되어 있던 폭탄이 신의주경찰서(新義州警察署)에 발각되었다. 14일 폭탄 일부를 2~3명의 동지와 함께 서울로 운반했다가 발각되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은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명하여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 의열단의 거사 계획이 드러나 청년 40여 명이 검거되었다.
이오길은 15일 아침에 조황과 함께 종로경찰서(鐘路警察署)에 체포되었다.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및 총포화약류취체령(銃砲火藥類取締令) 위반, 강도죄’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기소되었다. 1923년 6월 12일에 예심(豫審)이 종결되면서 면소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3. 6. 12)
- 사상월보(思想月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제1권 제6호 7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