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중순경 황해도 (黃海道) 신천군 (信川郡) 읍내리 (邑內里) 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집안을 방문하면서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하고 동월 (同月) 하순경 동군 (同郡) 읍내 (邑內)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체포 (逮捕) 를 피해 동년 (同年) 5월 중국 (中國) 길림성 (吉林省) 유하현 (柳河縣) 삼원보 (三原堡) 로 피신하여 『한족신보 (韓族新報) 』의 기자로 반일 (反日) 기사를 게재하여 항일의식을 고취 하는 한편, 1920년 1월 흥경현 (興京縣) 의 왕청문 (旺淸門) 에서 서간도 지역 한인들의 반일단체인 국민회 (國民會)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동년 (同年) 3월 흥경현 (興京縣) 의 중장도 (中將道) 에서 권재중 (權在重) ․전승우 (田承雨) 와 함께 친일파 원성오 (元成五) 를 살해한 후 동년 (同年) 11월 경성 (京城) 으로 왔다 1921년 3월경 체포 (逮捕) 되었고, 1922년 5월 석방된 후 요녕성 (遼寧省) 영고탑 (寧古塔) 에서 적기단 (赤旗團) 기관지『벼락』간행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 1월부터『선봉』편집부에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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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박정훈은 경성(京城) 사립(私立)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17년 9월부터 장로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중순경 황해도(黃海道) 신천군(信川郡) 읍내리(邑內里)에서 기독교 신자들의 집안을 방문하면서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하고 동월(同月) 하순경 읍내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逮捕)를 피해 동년(同年) 5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原堡)로 피신하여 『한족신보(韓族新報)』의 기자로 활동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20년 1월 흥경현(興京縣)의 왕청문(旺淸門)에서 서간도 지역 한인들의 반일단체인 국민회(國民會)의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동년(同年) 3월 흥경현의 중장도(中將道)에서 권재중(權在重)·전승우(田承雨)와 함께 친일파 원성호(元成五)를 처단한 후 동년(同年) 11월 경성으로 왔다가 1921년 3월경 체포(逮捕)되었고, 1922년 5월 석방된 후 요녕성(遼寧省) 영고탑(寧古塔)에서 적기단(赤旗團) 기관지 『벼락』 간행에 참여하였으며 1927년 1월부터 노령 연해주 『선봉』 편집부에서 근무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朴定勳의 검찰 신문조서(1921. 3. 4)
- 外國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270면
- 朝鮮日報(1921. 3. 16, 3. 17)
- 東亞日報(1922.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