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강원도 평창(平昌)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 평창군 대화면(大和面) 장날과 이튿날 평창읍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손상봉은 평창군 원당리(元堂里)에 사는 유영묵(劉永默)의 집에서 동지들과 회합하여, 이해 4월 4일 평창군 대화면(大和面) 장날과 이튿날 평창읍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거사 준비를 하며 동지들 규합에 나섰다.
그는 도출리(島出里) 최태제(崔泰悌), 부동(否洞) 오정천(吳正天) 등에게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고, 4월 3일 그들과 함께 이승로(李承魯)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드는 등 거사준비를 차질없이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종하(李鍾河)가 동지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사전 발각되었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7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7. 16.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59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968面
- 江原道抗日獨立運動史(光復會江原道支部, 1991) 第1卷 88·155·39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