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북 고창(高敞) 사람이다.
1941년 6월, 일본 동경의 입교대학(立敎大學) 예과(豫科) 2학년에 재학 중 중앙대학의 배종윤(裵宗潤)·강상호(姜相湖) 등과 함께 회합을 갖고 현재 한국의 실정을 토로하고 그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대한식민지 정책, 그 가운데서도 특히 창씨개명(創氏改名)과 한국어 폐지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하였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 민족의식을 고양하며 민족의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출 것을 결의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도 일제의 조선통치는 조선을 무시한 비인도적 식민지 정책의 발로이므로, 장차 미일전쟁이 벌어져 동경이 혼란에 빠지게 될 때 일제히 봉기할 준비를 갖출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통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항할 것 등을 수시로 모여 논의하였다.
그러나 1941년 10월 14일 배종윤·강상호 등의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다가 1942년 9월 28일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7권 31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340·134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699·7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