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 11. 9 서울에서 사숙 (私塾) 고학당 (苦學堂) 교사 이종률 (李鍾律) 이 기초한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정책 (政策) 비판격문을 휘문고등보통학교내 (徽文高等普通學校內) 의 다수 학생들에게 약 40장을 반포하였고 1929. 11. 3 광주 (光州) 학생운동 (學生運動) 때 참여하여 시위운동을 하였고, 그 후 각 학교 대표들과 함께 회합하여 1930. 1. 15 9시 (時) 를 기해 궐기를 결의하고 항쟁하여 퇴학을 당한 후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에 4년간 (年間) 집행유예 (執行猶豫) 를 받았으나 약 (約) 4년 1월간 (月間) 의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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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남 목포(木浦) 사람이다.
1928년 11월 9일 서울에서 사숙(社塾) 고학당(苦學堂) 교사 이종률(李鍾律)이 기초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정책 비판 격문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내의 다수 학생들에게 약 40장을 배포하였다. 그 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시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각 학교 대표들과 함께 회합하여 1930년 1월 15일 9시를 기해 궐기할 것을 결의하고 항쟁하다가 퇴학을 당했다.
같은 해 3월, 중국으로 건너가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1932년 9월 북경(北京)에서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그는 1932년 1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照會回報原帳(警察廳)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50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597·599面
- 中央日報(1977.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