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월 21일 전남 (全南) 완도군 (莞島郡) 고금면 (古今面) 청룡리 (靑龍里) 에서 광무황제 (光武皇帝) 서거 1주기를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고자 격문을 만들어 고금도 (古今島) 보통학교 (普通學校) 기숙사에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3월 10일을 받았으며 1932년 4월 고금면 (古今面) 농업조합 (農業組合)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징역 10월(미결구류 (未決拘留) 52일 통산 (通算) )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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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20년 1월 10일 전남 완도군(莞島郡) 고금면(古今面) 청룡리(靑龍里)에서 정학균(鄭鶴均)과 함께 1월 22일 광무황제 1주기를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현렬은 1월 21일 밤 격문을 만들어 고금도 보통학교 기숙사에 배포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이현렬은 1920년 2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월 10일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에도 이현렬은 1932년 4월 고금면 농업조합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1920. 2. 10)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3.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