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2년 6월 4일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永保里)에서 최판옥(崔判玉) 등의 주도로 전개된 소작권(小作權) 이동 방지를 위한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소작권 이동 문제는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 등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으로 인해 한국 농민 다수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문제였다.
덕진면 내 영보리 등의 청년회원 약 70명이 영보정(永保亭) 뒷산에서 야유회를 연다는 이유로 모였다. 최판옥과 김판권이 신구(新舊) 소작인 간의 소작권 이동 방지를 위해 시위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자 모두가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신 소작인의 집으로 몰려가 그 행위를 질타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최규원 등은 6월 4일에 영암경찰서(靈巖警察署)에 붙잡혔다.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木浦支廳)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가택침입(家宅侵入)’으로 벌금 30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즉시 공소를 제기했다. 1934년 2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같은 달 25일에 방면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1933. 9. 29)
- 사상월보(思想月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제4권 1호 13~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