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황해도 연백(延白) 사람이다.
신재홍은 주로 1907년 해서의병(海西義兵)의 중심이었던 박기섭 의병부대에 참진(參陣)하여 활약하였다. 그는 해서유학(海西儒學)의 거두인 유치경(兪致慶)·신석원(申錫元)·변석현(邊錫玄)·채홍두(蔡洪斗) 등으로부터 사사받았으며 의암 유인석(柳麟錫)이 평산(平山)에 은거할 때 그의 문인이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전국 각지에서 유림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일어났다.
평산에서도 유치경·신석원·변석현·채홍두·신재봉 등이 거의를 준비하기 위해 유인석과 빈번한 왕래를 하게 되었다.
격문을 작성하고 의병장을 추대하고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 중에 신재홍과 그의 형인 신재봉은 천여 석 지기에 이르는 가산을 팔아 이들을 후원하였다.
군사를 취합한 이 의진(義陣)의 의병 수는 수백여 명에 이르렀으며 의병장으로는 목천부사(木川府使) 박기섭을 추대하고 그의 형 신재봉은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다. 박기섭 부대는 연백군 연안읍 남산과 도평산에서 왜적과 접전을 벌였으나 무기의 열세 등으로 패전하고 말았다.
이에 우병렬(禹炳烈)을 중심으로 다시 의병을 모집하게 되었는데, 이때 의병 모집을 위해 재령에 갔던 소모장 신재봉이 왜적에게 피살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비분강개하여 의병진에 가담, 친형과 국가의 원수인 일제를 몰아내기 위하여 대일항전(對日抗戰)에 힘썼으나 아쉽게도 재령 표동에서 왜적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평산신씨대동보(1930. 9. 25) 전서공파 제2권
- 황해도연백군괘궁면지(괘궁면민회, 1985. 5) 194면
- 창의록(정미의요, 황해도, 1947. 5) 18·31면
- 연백군지(연백군지편찬위원회, 1986. 5. 25) 3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