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加州)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부인회(韓國婦人會) 대표로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결성에 참여하여 동 단의 총단 재무ㆍ서기, 조선여자대학 협조회 발기인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14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샌프란시스코부인회(桑港婦人會)를 조직하기로 논의하고 샌프란시스코 한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1919년 5월 18일 다뉴바의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와 새크라멘토의 한인부인회(韓人婦人會)가 연합 발기하여 부인회 합동(合同)을 발표하자, 이를 계기로 부인회 통합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해 8월 2일 5개 지방 부인회가 개최한 합동발기대회에 전그레이스ㆍ박애나ㆍ최유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한국부인회 대표로 참석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조직하였다. 1924~1925년, 1927~1929년, 1932~1933년 동 애국단 총단(總團)의 재무로 활동하였다. 1928년 김필례ㆍ차재명 등과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의 재정 곤란 소식을 전해 듣고, 한인여성 교육을 후원하기 위해 재정을 지원하였다. 1930년 3월 애국단 총단 위원으로 광주학생운동에 관한 진상을 영문 책자로 출판ㆍ선전하려는 대한인유학생총회에 60달러를 지원하였다.
1931년 애국단 총단 위원으로 한국에 여자대학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여자대학 협조회 발기인이 되어 2천 달러를 모집하여 기부하였다.
1942년 애국단 총단 위원을 역임하고 1943년 애국단 로스앤젤레스지부(羅城支部)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1월에는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기관지 『독립』 신문사로부터 로스앤젤레스 본사에서 개최되는 제3차 사우총회 참석을 요청받았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의연금, 대한민국임시정부후원금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14. 6. 25, 1919. 1. 23, 5. 27, 5. 29, 1924. 4. 24, 1925. 3. 19, 3. 26, 1926. 1. 14, 1927. 1. 13, 3. 3, 1928. 1. 12, 3. 8, 10. 4, 10. 18, 1929. 2. 14, 3. 14, 1930. 1. 16, 3. 6, 6. 4, 7. 31, 1931. 2. 12, 3. 12, 1932. 1. 7, 2. 18, 3. 17, 6. 19, 7. 21, 1933. 2. 16, 1936. 1. 23, 1937. 10. 28, 1938. 2. 3, 3. 3, 1939. 2. 23, 1941. 2. 20, 1942. 2. 5, 6. 18, 6. 25, 11. 12, 1943. 2. 25, 5. 27, 7. 1, 9. 30, 10, 28, 12. 23, 1944. 11. 30, 1945. 8. 16, 8. 23)
- 獨立(1943. 10. 27, 1944. 3. 1, 12. 13, 12.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제8집 738~7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425~42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권 884~885면 ㆍ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3권 18, 3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