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0년 망국 후 세상일을 걱정하던 그는 1915년경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했다. 초창기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한 보천교는 식민지 통치에 신음하던 민중들이 좌절과 실의에서 벗어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었으며, 1920년대 이후 세력을 급속히 확대하여 지하비밀조직 형태를 띠면서 반제 저항운동을 벌였다.
강증산(姜甑山)을 교조로 삼고 차경석(車京石)이 교주로 있었던 보천교는 1936년 차경석의 사망과 조선총독부의 해산령으로 인해 교단이 해체되면서, 태을교(太乙敎)·선도교(仙道敎)·원군교 등으로 분파되었다. 홍순문(洪淳文)을 교주로 한 원군교는 중일전쟁 이후 강증산의 교리를 수행하기 위해 강력한 결사조직의 결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는 1941∼1942년 원군교 교인으로서 김만암(金萬岩)의 권유에 의해 강재숙(姜在淑)·전봉균(田鳳均) 등과 함께 교단 내 조직된 항일비밀결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1943년 12월 30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全州地方法院, 1944. 1. 10)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