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에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당시 김병농은 중국 안동현(安東縣)에서 장로교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2월, 그는 평북 의주에서 중국 상해에서 입국한 선우혁(鮮于赫)과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古寧)의 기독교회 목사 이원익(李元益)으로부터 경성(京城)과 평안도 일대에서 주요 기독교 인사들이 중심되어 만세운동을 일으키려는 거사에 동참해 줄 것을 권유받고 찬동하였다. 1919년 2월 28일 밤 김병농은 의주읍내 양실학교(養實學校)에서 장로회 목사 유여대(劉如大)와 김두칠(金斗七) 등 20여 명과 회동하고 거사를 논의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일 오후 3시경, 김병농 등은 평북 의주읍 양실학교에 모여 유여대 등과 함께 군중에게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설명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의주 읍내로 행진하였다.
이 일로 붙잡힌 김병농은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25, 52, 134, 516, 783~785, 1178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11권 30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23면
- 豫審終結決定書(1919. 8. 30)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11. 6)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2. 27)
- 每日申報(1919. 9. 17,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