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9월 중국 유하현(柳河縣)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덕천지단(德川支團)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농무계(農務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義兵運動)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다. 본부는 유하현 삼원보(三源堡)에 두었으며,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 등이었다.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거쳐 의군부(義軍府)로 발전하였다.
서상억은 1920년 9월 덕천지단 통신부장으로 1921년 4월까지 단원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덕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1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1. 11. 11)
- 東亞日報(1921. 7. 4, 10. 7, 10. 16, 10. 17, 10. 28)
- 每日申報(1921. 10. 3, 10. 16, 10. 2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7권 403~4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04, 522, 5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