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음력 4월 평남 덕천군(德川郡) 태극면(太極面)에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과 순사 처단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19년 11월 만주에서 각 지방 청년단의 집결체로 조직되었다. 같은 해 12월 제1회 총회에서 총재 김승만(金承萬), 부총재 박춘근(朴春根), 총무 김찬성(金燦星) 등이 임명되었다. 일본 군경, 친일세력 토벌을 목표로 하고 기관지를 발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방침 등을 세계에 선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920년 민국독립단과 연합하여 광복군사령부로 통합되었다.
1920년 음력 4월 대한청년단에 가입해 덕천군 태극면(太極面) 화순리(和順里)에서 강치룡(姜致龍)ㆍ최문국(崔文國)ㆍ최봉순(崔鳳淳)ㆍ김계봉(金桂鳳)ㆍ최경순(崔敬淳)ㆍ김승경(金承京)ㆍ최창주(崔昌周)ㆍ김병로(金秉潞)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8월부터 평북 맹산군(孟山郡) 선유봉(仙遊峯) 호굴(虎窟)에 본부를 두고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립사상을 선전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덕천 덕주령(德周嶺)에서 영원경찰서(寧遠警察署) 순사 박의창(朴儀昌)을 처단하고 5천 여원을 획득하였다.
1921년 1월 9일 권총으로 무장하고 백영식(白榮式) 등과 덕천군 태극면 풍전리(豊田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였다. 같은 해 2월 풍전리에서, 4월 22일에는 태극면 화순리에서 이장이 소지하고 있던 145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2년 5월경 평남 덕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2년 7월 19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10월 14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8년 5월 1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 : 1922. 7. 22)
- 假出獄關係書類
- 東亞日報(1922. 5. 24, 5. 28, 6. 4, 7. 14)
- 每日申報(1922. 5. 2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56~56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