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북 고창(高敞) 사람이다.
기삼연(奇參衍) 의병장이 1908년 8월말 석수승암(石水僧庵)에서 의병을 모아 훈련을 마친 후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할 때, 그는 중군장(中軍將)에 선임되었으며 백성들의 항일의식을 촉구하는 내용의 격고(檄告文)을 각지에 발송하였다.
이같이 의병부대를 편성한 후, 기삼연 의병부대는 무장, 법성포, 고창, 장성 등지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위세를 떨쳤다.
1907년 11월 3일 행군해서 전남 영광군 진량면을 거쳐 법성포에 이르렀다. 여기서 의병진은 왜적과 접전해서 왜병 10여명을 쏘아 죽이고 왜적이 사는 집 10여호에 불을 놓았다.
1907년 11월 9일에는 영광의 남문밖에 도달하여 적병과 혼전하기를 3시간이 넘게하였다. 이 전투에서 비록 왜병 10여명을 죽였으나 성채가 견고하고 적병이 많았기 때문에 성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퇴병하였다.
각지를 전전하며 전투를 계속하고 있던 1908년 1월 19일 이른 새벽에 왜적 수백명이 의병들이 깊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기습하여 오자 그는 김용구·김성일·김봉수·김군칠·임선행 등과 함께 반나절이 넘게 치열한 전투를 하였다. 이때 양쪽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내었으며, 이 싸움에서 김진봉·임선행 등이 적의 탄환에 맞아 숨졌다.
그는 1909년 1월 중, 전투를 계속하면서 전남 영암군 외동면에서 4차례에 걸쳐 군자금 36원과 당목(唐木) 2필 등을 모집하였으나 일경에 붙잡혀 1910년 1월 18일 대구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苦難을 克服한 南道의 얼(張桓銖, 1972. 5. 30) 40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596·59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2輯 611·692·694·697·699·704·705面
- 判決文(1910. 1. 18. 大邱控訴院)
- 의병들의 항쟁(민족문화협회, 1982. 9. 20) 190∼19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72·87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