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1920년 음력 5월에 평양남도 대동군(大同郡)에서 박응률(朴應律)을 단장으로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 등의 연합회 조직이었다. 평안남도 총무 김봉규(金琫圭)가 박응규 등과 함께 설립하였다. 김봉규는 1920년 2월 중국 펑덴성(奉天省) 콴텐현(寬甸縣)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 직할의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사령장(司令長) 조맹선(趙孟善)의 부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목적과 활동은 독립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무기를 배급받아 친일분자를 처단하며, 항일독립전쟁이 시작되면 결사대를 조직해 무력투쟁을 전개하고, 국내에 파견되어오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안내하는 것 등이었다.
임원으로는 단장 박응률, 서기 김현재(金鉉載), 재무 황종해(黃宗海) 등이 선출되었다. 9월 단장 김현재, 부단장 박응률, 서기 김재성(金在成), 재무 황종해, 교통원(交通員) 조준묵(趙濬默) 등으로 개편되었다. 평안남도 강동군·대동군과 평양북도 철산군의 한국인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거나 단원들로부터도 거두었다. 김봉규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냈다.
나병렬이 활동했던 맹산·영원·덕천 등지의 조직 역시 1920년 11월 김봉규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맹산군 선유봉(仙遊峯) 호랑이굴(虎穴) 안에 본부를 두었다. 안국정(安國鼎) 등을 중심으로 단원이 수백 명에 달하였다. 여기에는 현직 면장 또는 순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군자금 모집뿐만 아니라 일본 경찰의 총살, 동·면사무소 등 하급행정기관 습격과 무기 탈취 등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경찰서·군청·면사무소 관리들에게 사형선고서·협박장·경고장 등을 보내 공포에 떨게 하고 사직(辭職)을 권고하여 실제로 사직한 관리도 있었다고 한다.
나병렬은 이 ‘대한독립청년단 사건’에서 사형(私刑)을 선고받게 되는 나병삼 형이며, 아우인 나병삼으로부터 권총 등 무기를 받아 은닉해두는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봄 이와 같은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었다. 6월 20~21일 사이에 맹산경찰서(孟山警察署)에 나병렬을 포함한 83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가 대부분 불기소(不起訴) 처분을 받았다. 나병렬 등 19명은 예심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나신택·나병삼은 10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발물단속규칙(爆發物取締規則) 위반’ 등의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나병렬은 같은 해 11월 21일 공판에서 검사의 구형보다 4월 감형(減刑)되어 징역 10월 및 벌금 50원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7. 4, 9. 20, 10. 5, 10. 9, 10.21, 11. 7)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10. 21, 11. 6, 11. 23)
- 독립신문(獨立新聞)(1921. 10. 28, 12. 6)
- 비밀결사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검거의 건(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2, 1921. 7. 11)
- 조선독립운동(朝鮮獨立運動)(김정명 편, 원서방, 1967) Ⅰ 631~63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4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9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