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5년 함남 단천군(端川郡)에서 비밀결사 자립단(自立團)을 조직하고 총무를 맡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자립단은 단천 지역 기독교 계통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한국(舊韓國)의 광복을 위한 교육계몽 활동과 혁명 등을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1915년 음력 6월부터 8월 사이에 중국 서간도 지방에서 돌아온 최석희(崔錫熙)ㆍ이홍용(李洪容)의 권유로 강명환(姜明煥)ㆍ방주익(方周翼) 등과 함께 자립단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8월 유창률(劉昌律)ㆍ이항근(李恒根)ㆍ이임배(李林倍)ㆍ이동섭(李東燮) 등과 비밀결사 자립단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단원으로부터 입단금(入團金) 1원 및 월 회비 20전씩을 징수해 기금으로 적립하거나 상업을 하는 등으로 자금을 증식하여 청년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 계몽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15년 음력 9월 15일 밤 단천군 파도면(波道面) 외문리(外門里) 모임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맹약서(盟約書), 자립단규칙서(自立團規則書) 등을 작성하고 동지 규합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 최태형(崔泰亨)ㆍ심항기(沈恒基)ㆍ김수현(金洙現)ㆍ전성익(全性翊)ㆍ김율봉(金栗鳳)ㆍ전주익(全周益)ㆍ최만종(崔萬宗) 등이 자립단에 가입하였다.
1915년 음력 11월 5일(양력 12월 11일) 수하면(水下面) 하농리(下農里) 장암촌(長岩村) 서당에서 개최된 비밀모임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조직 방식과 운동노선을 확정한 뒤 임원을 선출하였다. 임원은 단장 방주익, 부단장 전성익(全性翊), 조직 강명환, 재정 심항기(沈恒基), 서기 최태형(崔泰亨) 등이었으며, 이때 총무에 선임되었다.
자립단은 창립 이후 먼저 단천군 내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인접한 이원(利原)ㆍ북청(北靑)ㆍ성진(城津)ㆍ길주(吉州)ㆍ풍산(豊山)ㆍ갑산군(甲山郡) 등지로 조직을 확대하여 많은 단원을 규합하였다. 또한 자립단에서는 수하면에 광복청년연성소(光復靑年練成所)를 설치하여 대한독립군에서 배속한 교관의 지도 아래 독립군을 양성할 계획도 세우는 등의 활동을 하다 단원 19명과 함께 단천헌병분대(端川憲兵分隊)에 붙잡혔다.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함흥감옥(咸興監獄)에서 옥고를 치르고 1917년 10월 17일 출옥하였다.
출옥 후 만주로 건너가 의군단(義軍團)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 왕청현(汪淸縣) 합마당(蛤?塘)에 거주하던 1921년 9월 1일에는 의란구분서(依蘭溝分署) 경찰관에게 집에 은닉하고 있던 장총(長銃)과 탄환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장백현(長白縣)에 거주하던 1922년 가을경 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2년 12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7년 5월 1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16. 4. 17)
- 刑事控訴事件簿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間島地方不逞鮮人의 狀況에 關한 件(1921. 9.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9)
- 東亞日報(1921. 10. 16)
- 每日申報(1916. 3. 19, 4. 2)
- 新韓民報(1916. 4. 27)
- 中外日報(1927.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