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중반 황해도 사리원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국장 손재흥, 교통국원 김치현(金致鉉) 등과 사리원청년결사단(沙里院靑年決死團)을 조직하였다. 이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신문』을 배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고, 청년단원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그 산하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의 조직 및 지원과 관련하여 여성단체를 지도했다.
이는 군자금 및 독립단원의 모집에 활용하고, 향후 독립전쟁에 필요한 간호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1919년 9월 황해도 사리원의 기독교회에서 김치현(金致鉉)에게 애국여자청년회(愛國女子靑年會)를 조직하여 조선독립운동에 진력하게 하였다. 또 같은 해 음력 11월에도 김치현, 박경애(朴敬愛), 우신애(禹信愛)에게 서신을 보내 애국여자청년회를 조직하도록 독려했다.
1921년 4월 체포되어, 1921년 5월 27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서흥지청(瑞興支廳)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9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대구형무소 김천분감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단 파견원의 검거(1920. 11. 11)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2) 제33권 39~45, 51~53, 102면
- 동아일보(東亞日報)(1922. 12. 18)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