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그는 주로 신보현(申甫鉉) 의진(義陣)에 참가하여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애국심이 깊었으며 16세에 부친 마원서(馬元瑞)의 "조선을 삼키고자 하는 왜병을 물리치는 일에 앞장서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듣고 이때부터 항일 활동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드디어 1908년 의병장 신보현과 함께 의병진의 부장(部長)이 되어 수십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로 파랑군으로서 의병들의 물품을 운반하였으며 신보현의 그림자처럼 시종일관 행동을 함께하면서 전북 순창군과 전남 담양군 일대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경 담양군 무정면까지 진출하여 총기로 무장한 1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으던 중 일경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며, 1909년 10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1910년 8월 사면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으나 고문의 후유증이 매우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09. 10. 27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 장성군사(장성군사편찬위원회, 1982. 3. 10) 3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