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평소 일제의 국권침탈에 통분한 마음을 금치 못하던 그는 7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1920년 8월 함남 단천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였다. 5명의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 13,350원의 출금계약을 하여 이를 단원인 김택률에게 전달하는 등 독립군 지원활동에 나섰다.
이어 그는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교통사무국(交通事務局)의 함남 단천군지국에 가입하여 군자금 수합, 국내정세의 파악, 임시정부의 국내연락 등의 임무를 담당하며 활동하였다.
교통사무국은 연통제와 더불어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주요한 조직이었다. 이들 조직은 국내 각지와 통신 연락을 갖춤으로써 임시정부의 영향력이 국내에 미치도록 하고 임시정부와 국민간의 기맥을 통하게 하여 독립을 완수할 때까지 내외 국민의 활동을 일치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1919년 국내 각지에 설치되었다.
염택눌은 이와 같은 교통국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중 1921년 5월 교통사무국 함남지국장인 조덕윤(趙德潤)이 일경에 붙잡히는 바람에 45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60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上卷 257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08面
- 韓國民族運動史料(3·1運動篇, 其 一)(國會圖書館) 954·955面
- 端川郡誌 增補版(端川郡誌增補編纂委員會) 138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582·583面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135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6卷 123面
- 東亞日報(1921.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