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898년 5월 16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심천면(深川面) 오봉리(五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음력 11월 22일경 중국 흥경현 강후천교구(江厚天橋溝)로 이주하였다. 1922년 음력 1월 대한의군부 제2소대장 서범선(徐範善)에 의해 의군부에 가입하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3년 음력 6월 중순 중국 홍묘자 하당구(下唐溝)에서 중국인과 일본인의 밀정을 동지 5명과 같이 사살하였다. 같은 해 8월 5일 대한의군부 제1중대 소대장 이경일(李京日)의 지휘하에 중국 관전현(寬甸縣)을 출발하여 6일 국내에 진입하였다. 8월 8일 새벽 장총과 권총을 휴대하고 평안북도 의주군 청성진주재소(淸城鎭駐在所)를 습격해, 전신 전화선을 끊고 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에 방화하였다.
1924년 5월 16일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군자금 모금활동을 하다가 신의주경찰서 순사 조득화(趙得和)에 의해 체포되었다. 같은 해 12월 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1925년 2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살인·방화·강도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5월 11일 석방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평양복심법원:1925. 2. 21)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25. 5. 16)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23. 8. 9)
- 동아일보(東亞日報)(1924. 6. 2, 12. 2)
- 시대일보(時代日報)(1924. 6. 23)
- 조선일보(朝鮮日報)(1924. 12. 5, 1925.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