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중국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재학 중 교관 지청천(池靑天)으로부터 군자금 및 독립군 모집 지시를 받고 평남 평양(平壤)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7월 고산자에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여 독립군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하순 교관 지청천으로부터 군자금과 독립군 모집 지시를 받고 중국 안동현(安東縣)에 도착했다. 안동현에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엄우룡(嚴雨龍)ㆍ김봉원(金鳳源)ㆍ윤세주(尹世柱) 등과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방법 등을 협의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독립군 양성 학교로 1911년 6월 10일 이회영(李會榮)ㆍ이시영(李始榮)ㆍ이동녕(李東寧)ㆍ이상룡(李相龍) 등이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 삼원보(三源堡)에 설립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에서 출발하였다. 1912년 봄, 통화현(通化縣) 합이하(哈泥河)에 교사(校舍) 8동을 신축하여 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하였고, 1913년 5월에는 학교 명칭을 신흥중학교(新興中學校)로 변경했다. 1919년 3ㆍ1운동 이후 수많은 청년들이 찾아오고 지청천ㆍ김경천(金擎天) 등도 망명해 신흥학교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신흥학교는 1919년 5월 고산자로 본부를 옮기면서 신흥무관학교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20년까지 약 3,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0년 상해에 본부를 둔 의용단(義勇團)에 김순록(金淳祿)ㆍ김봉섭(金鳳燮)ㆍ정석흥(丁錫興) 등과 가입해 같은 해 11월부터 평남 대동군(大同郡) 시족면(柴足面), 12월 강동군(江東郡) 원타면(元灘面)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강동군 고천면(高泉面)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9월 16일 평남경찰부, 평양경찰서의 연합경관대와 교전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3월 3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新聞(1921. 10. 5, 11. 26)
- 東亞日報(1921. 9. 19, 10. 30, 11. 6)
- 每日申報(1921. 10. 26, 10. 30, 1924. 8. 18)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第1卷 分冊 142, 5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1978) 제9집 366, 367면, 제14집 9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