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남 순천(順川) 사람이다.
신민부(新民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북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은 남만주일대에서 정의부(正義府)와 참의부(參議府) 등이 조직되어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자, 1925년 1월 목릉현(穆陵縣)에 모여 부여족통일회의(扶餘族統一會議)를 개최하고, 동년 3월 10일 영안현(寧安縣) 영안성(寧安城) 내에서 신민부를 조직하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 신민부에서는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김혁(金赫), 군사부위원장에 김좌진(金佐鎭), 참모부위원장에 나중소(羅仲昭), 외교부 위원장에 조성환(曺成煥) 등을 임명하여 교육활동, 홍보활동, 무력투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 때 황처준도 신민부에 가담하여 북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1928년 1월 25일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김혁 그리고 유정근(兪政根)·남중려(南重麗)·이춘섭(李春燮)·서광수(徐光洙)·김윤희(金允熙) 등 9명과 함께 하얼빈에서 중국군 30여명의 지원을 받은 일본영사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황처준은 옥고를 치르던 중 폐병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714·929면
- 동아일보(1928.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