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로 울분을 금치 못하고 있던 그는 문경에서 거의한 이강년(李康秊) 의진(義陣)에 서상업·신태식 등과 함께 참모관으로 가담하여 군자금을 제공하고 그 휘하에서 수차례의 전투를 통해서 왜적을 토멸하였으나 1896년 7월 의병을 해산하였다.
의병 해산 후 단양 산중에 은거하던 중, 1907년 정미7조약이 늑결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이강년 의병장과 재거의 할 것을 맹세하였다.
한편 해산당한 많은 대한제국의 군인들이 의병에 참가하였는데 김상태·이만원·권하서·권용우 등이 호응하여 와서 토왜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강년 의진에서 그는 좌종사부(坐從事部)에 소속되어 1908년 6월 이강년 의병장이 체포될 때 까지 1년여간 충청, 강원, 경상도 일대에서 일군과 격전을 벌이며 크게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이강년 의병장이 순국하자 재거의하여 왜병 14연대 및 51연대 등과 교전 중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이후 경북 문경근에서 은거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雲崗先生倡義日錄 12面
- 聞慶郡誌(增補版, 刊行年度 未詳) 381後面
- 聞慶大觀(聞慶文化院, 刊行年度 未詳) 102面
- 海東義士雲崗李康秊先生略史(紀念事業會) 1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307·73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