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천마대(天摩隊)에 가입하여 평북 의주(義州)ㆍ창성(昌城)ㆍ초산(楚山) 등지에서 면사무소와 경관주재소를 공격하고, 1925년 참의부(參議府) 소대장으로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천마산대는 3ㆍ1운동 직후인 1920년 3월경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무장투쟁 단체이다. 사령장은 최시흥, 부관은 최지풍(崔志豊), 참모는 박응백(朴應伯)ㆍ박영찬(朴泳燦)ㆍ최윤희(崔允熙), 경리는 김세진(金世鎭), 중대장 최의집(崔義輯), 소대장 김상옥(金尙玉)ㆍ김용택(金龍澤) 등이었다. 규모는 최대 200명 정도였으며, 군자금 모집과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 공격, 일본 군경 및 친일분자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현창주는 1920년 6월 의주군 옥상면(玉尙面) 경관주재소, 7월 초산군 판면(板面) 삼림간수소(森林看守所), 창성군 대유동(大楡洞) 경관주재소ㆍ우편소, 9월에는 초산군 도원면(桃源面) 경관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공격하여 일제 경찰을 처단하고 총기(銃器) 등을 획득하였다.
1925년 중국 집안현(輯安縣) 참의부 제4중대(中隊) 소대장(小隊長)으로 평북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5년 4월 초산을 비롯하여 운산(雲山)ㆍ영변(寧邊) 3군내의 부호가를 공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일제의 밀정으로 지목되던 윤창룡(尹昌龍)과 박춘근(朴春根)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32년 3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8. 12. 8, 1929. 9. 30, 1930. 12. 11, 1932. 3. 25)
- 中外日報(1929. 2. 21)
- 每日申報(1929. 10. 4, 1932. 3. 25, 4. 1)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69) 제5권 80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1978) 제10집 414~415면, 제14집 9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