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한창걸은 연해주 포시예트구역 한청거우 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러시아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 군대에 징집되어 대 독일전에 참전하였다. 1918년 2월 수청(水淸) 니꼴라예프까로 이주하였으며, 그해에 조직된 니꼴라예프까촌 소비에트 회장에 선출되었다.
1919년 이후 연해주 수청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인 수청군대를 조직하여 수청과 올가 등지에서 일본군과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 백군(白軍)과 전투를 벌였다. 1922년 9월에 조직된 연해주 한인 빨치산 부대 혁명군사소비에트의 위원으로 일본군을 연해주에서 몰아내는 전투에서 공적을 세웠다.
한창걸은 1937년 9월 7일 러시아 유태인자치구 내무인민위원부 보안국에 반혁명 인사로 체포되어 총살형을 선고받고 1938년 2월 9일 하바로프스크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1958년 7월 7일 러시아 극동군관구 재판소에 의해 복권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인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531면
- 선봉(1933. 11. 7)
-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機密 第50號, 1921. 7. 28)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 在西比利亞(12)
-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機密 第71號, 1920. 11.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1)
- 동아일보(1922. 9. 10, 1922. 12. 30)
- 독립신문(1922. 12. 13, 1923. 5. 2)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國, 1935) 22, 24면
- 蘇城方面의 韓昌傑 一派의 현상에 關한 件(浦潮秘 第157號, 1922. 4. 5)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 在西比利亞(13)
- 스탈린시대(1934~1938) 정치탄압 한인(고려인) 희생자들(모스크바, 2000) 제4권 69, 130면
- 露領 煙秋方面 各種 狀況에 關한 件(高警 第272號, 1923. 2. 3)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 在西比利亞(14)
- 浦潮附近情報(朝特報 第29號, 1922. 12. 26) 不逞鮮人 狀況報告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가보훈처) 제34권 151~155면, 제35권 80~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