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는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 15도구(道溝) 군량동(軍糧洞)이었다. 한진술은 1922년 장백현에서 광정당(光正團)의 단원이 되었다. 광정단은 1922년 4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 대진단(大震團), 태극단(太極團), 광복단(光復團)의 일부가 통합된 군단으로 조직되었으며, 장백현과 임강현(臨江縣), 무송현(撫松縣) 등 압록강 주변지역을 근거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이주 한인의 산업발전을 도모하였다.
한진술은 김운서(金瑞雲), 김창일(金昌鎰) 등과 함께 함남(咸南) 삼수군(三水郡) 삼수경찰서(三水警察署) 영성경찰관(嶺城警察官)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 순사를 사살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었다.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無期懲役)을 받았으며,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17년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3. 6. 5·9)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698-699면, 제14집 938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3.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