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1년 9월 강원도 인제(麟蹄)에서 장총단(長銃團)을 조직하여 화승총을 휴대 하고 홍천군(洪川郡)의 경찰관 주재소를 공격하였고,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춘 천(春川)·홍천·인제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9월 강원도 인제에서 박순구(朴順九)와 함께, 한말 의병 활동을 하다가 일본 군대에게 살해를 당한 선친의 원수를 갚고자 장총단을 조직하였다. 동월 6 일 박순구와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斗村面) 자은리(自 隱里)에 소재한 경찰관 주재소의 경찰관을 공격하였다.
1922년 10월 5일 박순구와 함께 춘천군 동면(東面) 품걸리(品傑里) 김영주(金 泳柱)의 집에 들어가 일제 원절식(元折式) 12구경 엽총 1자루와 실탄을 입수하 였다.
1923년 6월 3일 두 사람은 다시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 주재소에 근무하는 순사 진류기량부(津留崎良夫)에게 발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4년 9월 14일 자신의 지휘 아래 마도현(馬道賢)·안이순(安二淳)과 함께 총을 휴대하고 강원도 인제군 남면(南面) 어륜리(於倫里)의 김수룡(金洙龍)에게 자신들 이 상해임시정부 위원임을 자처하며 군자금을 요구하여 36원을 모금하였다.
마만봉이 주도하는 장총단은 형제 또는 내외종(內外從)의 인척 관계로서 모두12인으로 구성되었는데, 1922년 10월 이래 1927년 11월까지 강원도 인제에 있는 가리산(伽里山)을 근거로 하여 인제군 일대와 홍천·춘천·양구(楊口) 등지에 걸쳐 24개소의 경찰 관서를 공격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7년 12월 체포되어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살인미수·강도·강도살인·가택침입·강도미수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경성형 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8. 10. 2)
- 東亞日報(1926. 11. 19, 1927. 12. 2, 3, 7, 1928. 6. 17, 9. 25, 9. 26, 9. 27, 10. 3, 12. 1)
- 朝鮮日報(1927. 12. 9, 1928. 10. 4)
- 中外日報(1928. 10. 3)
- 執行指揮書(京城地方法院:1928. 10. 3)
- 假出獄執行濟의 件 報告(京城刑務所長:1935. 4. 17)
- 假出獄의件(京城刑務所長:1935. 4. 17)
- 假出獄의 件 具申(京城刑務所長:1935. 4. 17)
- 朝鮮日報(1923. 10. 24)
- 東亞日報(1923. 10. 24, 1924. 1. 29)
- 獨立新聞(1923.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