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 9. 14 강원도 춘천에서 1907년 의병활동 (義兵活動) 을 하다가 일군 (日軍) 에 피살 (被殺) 당한 부친 (父親) 마정삼 (馬正三) 의 복수를 위해 마만봉 (馬萬奉) , 안이순 (安二淳) 등 11명과 함께 경찰관서 (警察官署) 를 습격, 일경 (日警) 을 사살 (射殺) 하고, 자산가 (資産家) 들로부터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할 것을 계획하여 총기 (銃器) 를 휴대하고 인제군 (麟蹄郡) 남면 (南面) 김수룡 (金洙龍) 으로부터 군자금 (軍資金) 36원을 모집하는 등 강원도 (江原道) 일대 (一帶) 에서 3년여간 (年餘間) 무장활동 (武裝活動) 을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징역 5년을 받고 3년 3월여 (月餘) 의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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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강원도 춘천(春川) 사람이다.
부친 마정삼(馬正三)이 춘천 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다 1907년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당한 후 부친이 사용하던 화승총 7정을 집안 깊숙이 숨겨 놓고 부친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기다리던 중, 역시 1908년 유중락(柳重洛) 의진(義陣)에 속하여 의병투쟁을 전개하다 붙잡혀 순국한 박영관(朴永寬)의 아들 박순구(朴順九)와 의기 투합하여 마침내 서로 협력해서 항일투쟁에 나서기로 맹약하였다.
그리하여 동생 마만봉(馬萬奉), 사돈인 안이순(安二淳)·안귀봉(安貴鳳) 형제 인척인 전봉학(全鳳學) 등을 가담시켜 총원 12명으로 장총단(長銃團)을 구성하여 화승총과 사냥총으로 무장하고 1921년 10월이래 만 6년 동안 인제(麟蹄) 가리산(伽里山)을 본거지로 하여 전후 19회에 걸쳐 홍천(洪川)·춘천·인제·양구(楊口) 등지의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경을 사살 처치하며 1924년부터는 부호층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 또는 징수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1927년 11월 일제 군경의 대규모 포위수색작전으로 전원 붙잡혔다.
이 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3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8. 10. 2 경성지방법원)
- 동아일보(1928. 9. 25, 9. 26)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919면
- 조선일보(1927. 12. 9, 1928. 2. 15, 9. 22, 9. 26, 9. 27, 10. 3, 10. 4, 12. 1,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