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1927년 강원도 일대 (一帶) 에서, 의병활동 (義兵活動) 을 하다가 일군 (日軍) 에 피살 (被殺) 당한 마정삼 (馬正三) ('92 애국장 (愛國章) )의 복수를 위해 마만봉 (馬萬奉) 안이순 (安二淳) 등 11명이 경찰관서 (警察官署) 를 습격, 일경 (日警) 을 사살 (射殺) 하고 자산가 (資産家) 들로부터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는 등의 활동을 할 때 참여하여 총기 (銃器) 를 휴대하고 1924. 12. 28 춘천군 (春川郡) 북산면 (北山面) 거주 정인영 (鄭寅榮) 으로부터 370원, 1926. 6. 18 홍천군 (洪川郡) 북촌면 (北村面) 변월여 (卞月汝) 로부터 110원의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6년을 받고 4년 10월여 (月餘) 의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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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강원도 춘천(春川) 사람이다.
춘천 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다 1907년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당한 외삼촌 마정삼(馬正三)의 아들인 마도현(馬道賢)·마만봉(馬萬奉) 형제와 역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다 1908년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당한 박영관(朴永寬)의 아들 박순구(朴順九)가 장성한 뒤 서로 협력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고 일제 침략세력을 토멸키로 맹약하고 1921년 9월경부터 화승총과 사냥총으로 무장하여 홍천(洪川)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할 때에 형인 안이순(安二淳)을 따라 그들과 뜻을 같이하기로 하고 가담하였다.
그 후 마도현의 친인척인 마남룡(馬南龍)·전봉학(全鳳學) 등을 추가 가담시켜 총원 12명으로 장총단(長銃團)을 구성하여, 7년여 동안 인제(麟蹄) 가리산(伽里山)을 본거지로 하고 홍천·춘천·인제·양구(楊口) 등지를 무대로 전후 19회에 걸쳐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경을 사살 처치하며, 부호층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 또는 징수하는 등의 활동으로 이 일대의 일경을 괴롭히다, 1927년 11월 일제 군경의 대규모 작전으로 전원 붙잡혔다.
이 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받고 4년 10여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8. 10. 2 경성지방법원)
- 동아일보(1928. 9. 25, 9. 26)
- 조선일보(1927. 12. 9, 1928. 2. 15, 9. 22, 9. 26, 9. 27, 10. 3, 10. 4, 12. 1, 12. 14)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9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