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한국언은 1919년 11월, 주기정(朱基鼎),조기수(趙基洙),이창해(李昌海),최태준(崔泰俊) 등과 함께 김영란(金永蘭)의 권유로 공성단(共成團)에 가입, 평남 성천 등지로 다니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공성단은 숭의단(崇義團)과 함께 항일민족정신을 선전,고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할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김영란,최병갑(崔炳甲),박곽수(朴郭洙)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1919년 12월 27일, 김영란,조기수,최태준 등과 함께 평남 성천군 삼덕면 문원리 정현조(鄭炫祚)를 찾아가 군자금 기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정현조가 관할 경찰서에 신고함에 따라 일경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곤경에 빠지고, 동지 주기정과 김병항(金炳恒) 등은 체포되었다. 1920년 1월 1일, 최태준의 집에서 김영란,조기수 등과 만나 정현조의 부일,반민족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날 밤 함께 정현조 집에 방화하였다. 그 후 어린 시절의 학우였던 이치범의 집에서 약 1개월 반 동안 머물면서 김영란과 함께 순천군 신창면 신이리 최홍주(崔洪柱)를 찾아가 군자금을 갹출하고, 평안남도 난산(卵山)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동지들이 총검거를 당하게 되자 만주에 피신하였다.
1921년 9월 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결석판결로써 소위 강도방화죄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10여 년을 지낸 1934년 2월 일제 관헌에 체포되어 살인 및 방화죄로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6년 12월 18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969~972면, 1244~124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1집 88~91면
- 判決文(高等法院:1923. 5. 10)
- 독립신문(1921. 10. 14)
- 조선중앙일보(1934. 4. 9, 4. 11)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85, 5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