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박진성(朴晋成) 및 아들 김치경(金致慶)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 거사를 계획하고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만들어 시위준비를 갖추었다. 편항(鞭巷) 장날인 이날 오후 2시경 장터에 모인 5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전개하고 편항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기물 등을 파괴하는 등 활동하였다. 시위는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 전개되다가 일경의 무력 탄압으로 강제 해산된 후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이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다시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17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324·1325면
- 판결문(1919. 6. 26 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