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충청북도(忠淸北道) 영동군(永同郡) 출신이다. 1927년 6~7월경 북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부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신민부는 1925년 1월 목릉현(穆陵縣)에서 북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하여 개최된 부여족통일회의(扶餘族統一會議) 결과 조직되었다.
신민부에 합류한 최진만은 김천일(金千一)‧이계환(李桂煥)‧최복손(崔福孫) 등 5명과 함께 1927년 7월 15일 하얼빈(哈爾濱) 부두구(埠頭區) 공창가(工廠街) 이익겸(李益謙)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같은 해 9월 신민부 경리부 위원장 유정근(兪正根)의 명령을 받아 하얼빈에 신민부 지부를 조직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친일단체인 조선인민회를 해산시키고자 9월 26일 권총을 휴대하고 하얼빈 부두구 15도가 10호의 조선인민회 사무실을 공격했다. 그 결과 민회 해산 서약서를 받고 민회 도장 4개와 회원명부 9권을 압수했다.
무장투쟁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선전하는 『개척(開拓)』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 『개척』 발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1927년 8월 13일 하얼빈의 박애의원(博愛醫院) 조동환(趙東煥)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후 이종익(李鍾翊)‧조인원(趙寅元)‧김태형(金泰衡)‧김한규(金漢奎) 등에게 군자금을 모집했다.
한편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는 신민부의 중심지인 중동선 해림(海林)에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배두산(裵斗山)을 임명했다. 이에 신민부는 배두산에게 해림을 떠날 것을 권고했고 이에 저항하자 그를 처단하기 위한 별동대원을 파견했다.
최진만은 신민부 별동대 대장 황덕환(黃德煥)의 지휘를 받아 1927년 8월 12일 배두산을 권총으로 처단했다. 이어서 10월 26일 하얼빈 조선인민회를 습격하여 사무원 등을 포박하고 문서를 압수했다. 또한 하얼빈 부두구(埠頭區)의 이익겸(李益謙)으로부터 군자금 1,500원을 모집했다.
1928년 1월 25일 일제 경찰과 중국군 1개 중대가 위사현(韋沙縣)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신민부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장인 김혁(金赫)과 경리부 위원장 유정근 등을 공격할 때 최진만도 체포되었다. 1928년 5월 17일 대련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강도‧공갈’등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여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8. 24)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2. 25, 4. 25, 5. 20)
- 매일신보(每日申報)(1928. 1. 31)
- 중외일보(中外日報)(1928. 4. 2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제5권 517~519면
- 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76) 제7권 488~495면
- 조선문제자료총서(박경식, 1983) 제11권 498∼5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