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8월 중국 길림성 관전현에서 대한중흥단 결사대 서기로 활동하다 체
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7월 고향인 평북 벽동(碧潼)에서 대안(對岸)을 건너 중국 길림성 관전현
(寬甸縣)으로 이주하였다. 관전현 대황구(大荒溝) 부근 김봉국(金奉國)의 집에서
대한중흥단(大韓中興團) 지단(支團)이 설치되자, 중흥단 결사대에 가입하고 서기
로 임명되어 일제의 국내 경비 동정을 정찰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흥단은 통화현(通化縣) 칠도구(七道溝)에서 백인균(白寅均)을 중심으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통화현 남부와 집안현(輯安縣) 노령(老嶺) 이남을 근거로 무장활동과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중흥단은 한족회(韓族會) 계열의 무장단체로 활동하
였으며, 벽동에서 조직된 벽동대한청년단과도 협력하여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중흥단 지단의 활동을 탐지한 벽동경찰서는 29일 김봉국의 집을
급습하였다. 이를 감지한 중흥단 단원들은 절벽 위에 잠복하여 일본군경이 통
과할 때, 총을 발사하며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장 전재호(田在皓,
이명 田虞式)와 함께 붙잡혀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1. 8. 15)·國外情報(1920. 11.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