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소속으로 국내에 파견되어 군자금 모금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은 서간도를 무대로 하여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로 장백현(長白縣)에서 조직되었다. 1920년 1월 당시 임원은 단장 이은향(李殷鄕), 부장 이태걸(李太杰), 군사부장 이동백(李東白), 재무부장 윤덕보(尹德甫), 참모부장 김찬(金燦), 경찰부장 정삼성(鄭三星), 문사부장 김종기(金宗基), 외교부장 조훈(趙勳), 소집부장 김정익(金鼎益), 공창부장 김진무(金振武) 등이었다.
군비단은 3개 소대로 구성된 1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중대장은 이영식(李永植)이 담당하였으며, 1개 소대는 28명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지역별로 지단,지부를 설치하였으며, 지단장 및 지부장 밑에는 총무,재무,서기,통신사무원 등이 임명되어 있었다. 이후 군비단은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며, 흥업단(興業團), 광복단(光復團), 태극단(太極團),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등과 연합하여 지속적인 항일전쟁을 전개하였다.
최용억은 1916년 2월 가족을 동반하고 만주로 이주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동년(同年) 음력 9월 28일 이동백(李東白),이희삼(李熙三)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군비단에 가담하였다. 이후 충청도,경상도 지방 파견원(派遣員)이 되어 대한독립임시정부 약법안(約法案), 경고 우리 신대한동포(新大韓同胞), 군자금영수서(軍資金領收書) 등을 동단(同團)으로부터 교부받고 충북 영동(永同)과 경북 상주(尙州) 등지에서 독립군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최용억은 1920년 4월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2권 100~104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0. 4. 1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317면
- 동소문사건 용의자에 관한 건(동대문경찰서장 : 1926. 11. 7) 검찰사무에 관한 기록(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1030면
-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독립군비단원 체포의 건(忠淸北道知事: 1920. 2. 17)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