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여 모연대장 김승관(金承官)의 부하이며 서기로 활동하였다. 최시홍이 활동한 의군단은 3·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통칭 의군부(義軍府)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였다. 처음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단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李範允),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며, 중부(中部)의 경우는 참모장 고평(高平), 서무부장 이을(李乙),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 등이었다.
최시홍은 이 의군단에서 활발한 대일투쟁을 준비하였다. 즉 그는 1920년 음력 6월경 김승관 외 십수명의 동지와 함께 간도 대동구(大東溝) 및 수평동(水坪洞) 부근에서 그 지역 거주 주민들로부터 군자금 4백 원을 모금하였다.
동년 음력 7월 중순경부터 음력 9월 초순까지의 사이에는 최준극·현철 등 외 수명의 동지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함북 경성군(鏡城郡) 및 명천군(明川郡) 내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음력 8월 9일경에는 명천군 동면 양견동(良見洞) 이기원(李基元)의 집에서 부락민 4, 5명으로부터 군자금 1백 43원을 모금하였으며, 동월 19일경에는 동면 발하동(發河洞) 윤명호(尹明昊)의 집에 가서 동인으로부터 25원을 모금하였다.
최시홍은 동월 9일 및 13일 두차례에 걸쳐 동면 용암동 이병규(李秉奎)의 집에 가서 부락민 몇 명을 불러 군자금 제공을 명령하였으며, 동월 20일경에는 부락민 윤광헌(尹光憲)외 5명에게 65원을 징수하였다. 아울러 동월 12일경에는 경성군 어량면 하구동(河鳩洞) 정원태 집에 가서 동인으로부터 군자금 5백원을 내겠다는 출금 계약서 1통을 받았으며, 동월 27일경에는 동면 풍강동 이석유 집에 가서 동인으로부터 70원을 징수하는 등 최시홍은 활발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일경에 체포되어 3월 소위 제령 7호 위반 및 강도혐의로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12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2년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733·7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