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최원봉은 1922년 7월 경 중국 요녕성(遼寧省) 통화현(通化縣)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여 결사대원(決死隊員)으로 활동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11월 설립되었다. 부민단(扶民團)과 신흥무관학교 등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기존의 조직을 확대하여 한족회(韓族會)로 개편함과 동시에 군사조직으로 군정부(軍政府)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상룡(李相龍), 부총재 여준(呂準), 참모장 이탁(李沰) 등이 선임되었다. 군자금의 모집은 주로 한족회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군사활동은 신흥무관학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되었다.
서로군정서는 국내의 친일파 관료, 적의 밀정(密偵) 및 서간도 지역의 친일단체인 보민회,거류민회 등의 간부들에 대한 처단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의용군(義勇軍) 제1중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 부대는 백서농장(白西農庄)을 운영하던 백광운(白狂雲),신용관(辛容寬)에 의해 지도되었다. 서로군정서는 1924년 11월 25일에 정의부(正義府)의 결성에 참여함으로써 그 발전적 해체를 도모하였다.
최원봉은 백광운의 휘하에서 1922년 음(陰) 8월 평북(平北) 강계(江界)의 고산진주재소(高山鎭駐在所)를 습격하는 한편,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8년 10월 강계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등의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았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22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8. 11. 22)
- 朝鮮日報(1928. 11. 22)
- 假出獄關係書類(京城刑務所:1941.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