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9년 음력 8월경 중국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에서 국민부(國民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경호대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국민부는 192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참의부(參議府)ㆍ정의부ㆍ신민부(新民府) 등 3부가 통합하여 탄생한 조직이었다. 미쓰야 협정(三矢協定)으로 만주 내 항일독립운동이 위협을 받게 되자 기존의 3부를 통합하여 일제의 탄압에 새롭게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때 남만주의 국민부와 북만주의 혁신의회(革新議會)가 성립되었는데 국민부는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929년 음력 8월경 국민부 조선혁명군 제3중대 군인 장찬오(張贊五)의 권유로 국민부에 입대하여 경호대원이 되었다. 1930년 2월 15일 국민부 간부 이진탁(李振卓)의 명령을 받아 강옥성(姜玉成)과 함께 대립단체인 재중청년총동맹(在中靑年總同盟) 간부를 처단할 계획을 세우고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의 사립 동명학교(東明學校) 기숙사에서 교사 한청옥(韓淸玉)ㆍ박승렬(朴承烈)을 총살하였다.
1932년 9월 29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및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11월 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關係書類
- 每日申報(1932. 6. 24, 7. 1)
- 東亞日報(1932. 6. 25, 7.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