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11 황해도 (黃海道) 안악군 (安岳郡) 은홍면 (銀紅面) 온정리 (溫井里) 에서는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고향 (故鄕) 으로 돌아온 박치간 (朴致幹) 정계로 (鄭啓老) 유용원 (柳龍源) 등이 주동 (主動) 이 되어 온정리 (溫井里) 장날인 이날 거사하게 되었는데 온정리 (溫井里) 교회 (敎會) 영수 (領袖) 인 이정엽 (李正燁) 의 정원 (庭園) 에서 각 (各) 면 (面) 에서 모인 시위군중 수백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선언식 (宣言式) 을 거행한 다음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 (高唱) 하며 시가행진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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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황해도 재령(載寧) 사람이다.
서울의 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박치간(朴致幹)·정계로(鄭啓老)·유용원(柳龍源) 등이 안악군(安岳郡) 은홍면(銀紅面) 온정리(溫井里)로 돌아와서 계획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거사일인 3월 11일 오전 11시경 온정리교회 영수 이정엽(李正燁)의 집 정원에 운집한 대행면(大杏面)·서하면(西河面) 등 면민 수백명의 군중 앞에서 박치간이 정중하게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모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따라 시가행진을 벌이기 시작했다. 군중의 우렁찬 만세소리가 온 시가를 진동하고, 장터에 모인 군중까지 합세하여 1,000여명의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던 중, 일경의 무력탄압으로 시위대열이 무너지고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 붙잡혔다.
같은 해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9. 6 고등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292·2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