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음력 3월 중국 연길현에서 대한의민단에 가입하여 일본 밀정을 처단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3월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대한의민단(大韓義民團)에 가입하여 단원 100여 명과 함께 러시아 차피구(此彼溝)에서 무기 구입을 시도하였다. 같은 해 5월경 의민단 경호부장 심창순(沈昌淳)의 명령으로 일본 관헌 밀정 이채언(李采彦), 이채을(李采乙), 이병렬(李炳烈) 등 5명을 간도 숭례사(崇禮社) 오도구(五道溝)에서 체포하여 신문한 뒤 감금하였고, 경호단원 현빈(玄彬)의 명령으로 이채언을 심창순과 함께 처단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의민단은 1919년 간도 왕청현(汪淸縣) 춘화향(春華鄕)에서 천주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단장 방우룡(方雨龍), 부단장 김연군(金演君), 참모장 김종헌(金鍾憲), 영장(營將) 허은(許垠), 재무부장 홍림(洪林) 등이었다. 1920년 일제가 독립군 제거를 목적으로 간도 출병(出兵)을 단행하자, 같은 해 10월 대한의민단 방우룡과 김연군은 대한신민회(大韓新民會) 대표 김창순(金昌順), 박덕수(朴德洙),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정기원(鄭棋源), 장상하(張相河),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대표 최완(崔完), 김광(金匡) 등 4단체 대표와 협의하여 연합부대를 편성하기로 하고, 북로사령부(北路司令部), 간북남부총판부(墾北南部總辦府), 간북북부총판부(墾北北部總辦府)로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고,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참여하기도 하였다.
1922년 8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 및 방해, 살인죄로 징역 12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2. 11. 17)
- 每日申報(1922. 9.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773, 774면
- 刑事控訴事件簿